2023년 8월 20일 일요일

수려선, 기억하는 이 없어지는 근대문화유산

 

1. 수려선 개요
2. 건설 및 운영 역사
3. 기타 : 폐선 이후, 이모저모


수려선 멱조현터널로 추정되는 운행 당시 사진.


1. 수려선 개요

한국의 옛 철도 노선. 1931년 일제가 식량 수탈을 목적으로 만든 철도로, 수원~용인~이천~여주(총 73.4㎞) 구간을 이었다.
궤도 간격이 표준궤도(1435㎜)보다 좁아 협궤(762㎜)열차 혹은 꼬마기차라 불리기도 했다.
 
일제시대에 수원과 용인, 이천, 여주를 오가는 쌀을 운송하는 노선으로 사용되었지만,
광복 후에는 도민들의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경기도를 동서로 이어주던 협궤열차였다.
 

2. 건설 및 운영 역사

1) 건설

착공을 보도한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개통일은 1930년 12월 1일.
구간은 수원 - 용인 - 이천 - 여주. 42번 국도와 노선이 많이 겹치며 실제로 일부 구간이 수려선 노반 위에 지어졌다.
경기도의 쌀을 일본으로 이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선이다.
이천, 여주 지역 쌀을 운송하는 노선으로 부설되어, 수원역에서 수인선과 연계되어 인천항을 통해 반출되곤 했다.
이외에도 이천 구간은 안성선과 연결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으나 태평양 전쟁으로 안성선 일부가 폐지되었다.
 
의외로 당시 교통 상황이 열악했기에 여객 수요가 많았다.

2) 해방 이후, 폐선

1971년 12월 영동고속도로의 신갈~여주~원주(새말) 구간이 개통되면서 연선 주변 도로교통의 발달로
승객 흡수크리를 맞았고, 결국 이듬해인 1972년 4월 1일에 폐선되고 말았다.
 
일부 역의 주민들은 수려선 이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없으므로 폐지 반대 여론이 심했으며,
아예 주민들이 교대로 서울에서 시위도 했다고 한다.
 
현재 이 노선에 해당되는 구간은 토막이 난 채 제각각으로 개궤 및 이설되었다.
 

3. 기타

1) 폐선 이후

현재 이 노선에 해당되는 구간은 토막이 난 채 제각각으로 개궤 및 이설되었다.
또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 표준궤로 개궤하고, 구둔역 연장이 장기 계획에 포함되었지만
교통의 방향이 바뀌면서 무산되었다.
 
수원역에서 경부선, 수인선과 접속하는 것을 빼면 접속 노선이 하나도 없었다.
욕심을 내서 원주역까지라도 이었다면 지금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표준궤로 전환되어
전철을 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가능하겠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후신인 경강선이 원주까지 공사가 예정되어 있기는 하다.
 
타 노선 연결 계획이 있긴 했다. 일제강점기 안성선이 여주까지 연장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당선도 수원역에서 수인선과 직결되었다.
다만 분당선, 용인경전철, 경강선을 모두 이어도 용인-이천 사이가 이어지지 않아 완전한 노선이 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이 노선을 복원한다면 영동고속도로의 상습 정체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2) 이모저모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수원-여주 소요시간이 시간표 상으로만 무려 4시간 30분이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5시간을 넘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기관차가 툭하면 탈선했지만 차가 가벼워서 지렛대로 쉽게 복구하여 운행했다.
나중에 도입된 동차도 고장이 잦아서 연착은 다반사였다고.
 
옛 용인군의 중심지 이동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14년 전까지 옛 용인군청은 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구 구성면/읍)에 있었으나 1914년 일제의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 처인구청이 위치한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으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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