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왕좌강산형(홍라녀 4번째 전설.)
이 전설에서 언급된 홍라녀는 발해 황제의 딸이다.
어느 날 발해 황제는 경박호에서 사냥을 하다 범을 만나 위기를 맞이했다.이 때 어느 아름다운 낭자가 활을 메고 나오더니, 활로 호랑이를 쏘아 쓰러뜨렸다.
발해황제가 크게 놀라서면서도 위기를 넘긴 데 감사를 구하며 낭자에게 물었다.
"소녀는 홍라녀입니다. 5년전 소녀가 광풍에 휘말려 어디론가 떨어졌습니다. 그 때 장백성모님이 소녀를 구해주셨고, 그 후 저는 장백성모 님으로부터 무예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장백성모 님의 지시로 하산하여 내려 오던 중 황상폐하께서 위기에 처하신 것을 보고 소녀 외람되게도 무예를 펼쳐 폐하를 구해드리게 되었습니다."
발해의 황제는 이 말에 놀라면서도 기쁜 마음에 홍라녀와 같이 황도 상경용천부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얼마 뒤, 부여성에서 파발이 황도로 도착했다.
"거란군이 발해로 쳐들어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홍라녀는 여동생 녹라녀와 상의한 끝에 전쟁에 나갈 것은 황제에게 주청한다.
발해 황제는 그녀의 무예라면 전쟁에서도 적을 물리칠 수 있다 생각되어 그녀들의 주청과 요구를 허락했다.
홍라녀가 발해군의 총 지휘를 맡고 그녀의 여동생 녹라녀가 발해군의 참모를 맡아, 발해군은 출전했다.
그러나 그 때 거란에도 책사가 있어, 그는 홍라녀가 발해군 총사로 출전한다는 소식에 꾀를 내어 발해 황도 상경용천부에 군사를 보내 기습, 발해 황제 를 납치하고, 거란으로 데려갔다.
홍라녀는 이에 대노하여 거란으로 쳐들어가 거란 군사들을 무수히 무찌르고, 발해 황제를 적진에서 구출하려 했으나 발해 황제는 거란에서 이미 처형당한 뒤였다.
홍라녀는 비분에 차 거란왕을 죽이고(이 때 죽은 사람이 거란 왕이 아니라는 설도 있음.) 거란군을 무수히 몰살하는 등, 복수를 한 뒤 여동생 녹라녀와 같이 발해로 돌아왔다.
그녀들이 거란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무사히 발해로 돌아오자 발해 국인들은 그녀들(홍라녀와 녹라녀 자매)을 발해국의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였다.
지금도 경박호 남호두에는 아래 고대 글이 전한다.
<나라가 파괴되고 집을 잃었지만 원수를 눕힐돌 많고도 많아 홍라녀,녹라녀 자매가 발해왕(발해황제)으로 추대되었다네.>
--->홍보는 아니며 제 블로그에 연재중인 소설 초원의 꿈 모티브가 된 전설로 발해 마지막 여섯 황녀가 발해를 다시 세우고 다스리는 전설입니다..
2. 홍라녀비무형(홍라녀 7번째 전설.)
이 전설에 등장하는 홍라녀는 발해 황제의 딸로, 발해 공주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장백성모 불고륜마법에게 무예를 배웠는데 다 익힌 후, 황궁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발해황제의 원수가 그녀와 무예 배결을 해보자고 하였다.
원수는 말을 타고 활을 쏘아 첫 발은 과녁 중심에 가 명중하고 두번째 쏜 화살은 첫번째 명중된 화살을 떨어드렸다.
마지막 세번째 화살은 과녁을 달아맨 끈을 맞춰 끊었는데 이만화면 활쏘기의 달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홍라녀 차례가 되자 그녀는 원수와 다른 방법으로 활을 쏘았다.
한 사람에게 향불 세대를 머리에 이고 백 보밖에 가 서 있게 한후, 홍라녀는 말을 달리며 단숨에 화살 세 대를 쏘았다.
그 결과 향불은 모두 꺼졌지만 향대는 그대로 서 있었다.
원수는 무예대결에서 발해공주 홍라녀에게 진후, 은근히 앙심을 품었다.
돌아가는 길에 원수는 남 모르게 발해공주 홍라녀에게 활을 쏘아 홍라녀를 죽이려 했으나 생각 밖으로 발해공주 홍라녀가 날아가는 그 화살을 재치있게 받아쥐고 원수를 향해 오히려 그 활을 쏘았다.
발해황제는 이 소식에 대노하여 홍라녀를 암해하려는 자가 있다는 소식에 성을 내면서 이 일을 바로 조사하라고 명하였다.
홍라녀는 부황인 발해 황제에게 말한다.
" 조사할 것 없나이나, 폐하... 모자에 술이 없는 자가 이 딸을 모해하려 한 자이옵니다."
바로 이 때 변방에서 위급하다는 파발이 날아와 발해 황제는 원수에게 출정을 명령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워 속죄를 하게 했다.
3. 홍라와 녹라형...
이 전설에 등장하는 홍라녀와 녹라녀는 자매로, 어부의 딸들이다.
어릴 때 이미 부모를 잃은 두 자매는 서로 의지하며 경박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루는 그녀들이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세찬 풍랑이 일어 그녀 자매들은 배가 뒤집히면서 물에 그만 빠지게 되었다.
바로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고기잡이배 한 척이 나타나 그녀들을 구원해 주었다.
고기잡이 배 주인은 뜻밖에도 젊고 영준한 남자였다.
그 후부터 그물을 칠 때나 그물을 거둘 때면 이 젊은이가 와서 그녀 자매들을 도와 주었다.
그 젊은이는 살포리금이라 했는데 마음씨가 착하여 늘 자매를 잘 도와주었다.
두 자매는 그에게 정이 들엇으나 두 자매 모두 그에게 시집갈수 없는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매는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언니는 동생에게 시집가라 하고, 동생은 언니에게 시집가라고 하면서 한창 다투고 잇는데 살포리금이 그녀 두 자매를 청했다.
두 자매가 살포리금의 집 앞에 이르자 살포리금은 집 안에 들어갔다.
잠시 후 집 앞으로 젊고 영준한 두명의 젊은이가 그녀들 앞에 서 있엇다.
두 청년은 쌍동이로, 그 형은 살포리금이며 그 아우는 살포리온이었다.
그리하여 두 자매는 그들 형제에게 기꺼이 시집을 가게 되었다.
훗날 동단국 황제가 홍라녀와 녹라녀 자매가 미색이라는 말을 듣고 두 자매를 후궁으로 취하려 했다.
동단국 황제는 자객을 보내어 살포리금과 살포리온 형제를 죽여버렸다.
두 자매는 너무나 슬퍼 자결하려 했다. 그녀들은 생각 끝에 동단국 황제에게 남편의 제사를 지내게 해준다면 기꺼이 입궁하여 후궁이 되겠다고 했다.
동단국 황제는 자매의 말을 쾌히 승낙하였다.
그녀들은 동단국 황제에게 경박호 폭포 앞에 제단을 세우고 남편들에게 제를 지내게 한후 제를 다 지낸 후 그녀들은 경박호로 뛰어들었다.
4. 홍라와 지포형...
이 전설에서 등장하는 홍라녀는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처녀이다.
발해국 황제는 어느날 도사를 시켜, 미녀를 데려오게 하였다.
발해국 황제는 언제부터인가 색에 빠진 나머지 발해 전국의 미녀를 뽑아서 데려온 뒤,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그러나 성에 차지 않았는지 도사를 한번 더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황제의 명을 받은 도사가 주와 부를 두루 다니며, 미녀를 찾아 보앗으나 다 헛수고였다.
(도사는 황제의 명을 받고 미인경을 하사받은 뒤, 미인경을 가지고 황궁을 떠나온 것이다.)
그것은 황제가 하사한 미인경의 요구 조건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미녀가 있어 미인경에 비추어 보아도 미녀의 체격이 조금만 체격이 커도 안 되고, 조금만 말라도 안 되며 눈이 커서도 안 되며 눈이 작아도 안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도사가 미녀를 찾아 경박호까지 오게 되었다.
그 때 도사의 귀에 아름답고 은은한 피리소리가 들려오자 도사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그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피리소리는 높아졌다가도 낮아지고 느리다가는 빨라지기도 했는데 어찌나 구슬픈지 그 피리소리가 도사의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 했다.
알고 보니 홍라녀가 그의 마음속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어부의 딸은 얼굴이 환하여 아름다웟으며 몸에는 붉은 색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었으며 머리는 부드럽고 고왔으며, 큼직한 낭자를 얹엇는데 마치 연꽃이 피어난 것처럼 아름다웠다.
늙은 도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미인경을 비추니 미인경은 홍라녀에게 딱 맞았다.
늙은 도사가 홍라녀에게 다가가 말하기를 한 나라의 국모이신 황후 폐하가 되신 것을 축하한다고 말하자 부귀영화를 탐내지 않고 권세에 두려움이 없는 홍라녀는 자신은 이미 어부인 지포와 정혼한 사이라고 늙은 도사에게 말했다.
늙은 도사는 황궁에 돌아와 홍라녀가 황후가 되기를 거절하고 지포라는 청년과 이미 정혼한 사이라는 사실을 다 고해 바쳤다.
발해 황제는 이 말에 대노하여 군사를 보내 지포를 죽였다.
홍라녀는 이에 분개하여 지포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발해 황제의 배를 유인하여 경박호에 오게 한뒤, 발해 황제가 탄 배를 물에 가라앉게 하여 발해 황제를 죽였다.
(또다른 설로는 자신의 정인을 죽인 것을 분개한 나머지 홍라녀가 발해 황제를 활로 쏘아 죽였다고도 전해진다.)
이 때부터 홍라녀는 폭포 뒤에 앉아 우단을 짜게 되었고 지포의 영혼은 지포새가 되었다.
만약 사람들이 지포새가 우는 소리를 듣게 되면, 사람들은 폭포 뒤에 앉아있는 홍라녀를 볼수 있엇다 한다.
5.어녀거혼형 전설...
이 전설에서 서술한 홍라녀는 어부의 딸이었는데, 얼굴은 3월에 핀 복숭아 꽃처럼 아름다웠으며 허리는 실버들 같았으며 또한 살결은 백설같이 희었다.
그녀는 고니털과 기러기털로서 가볍고 부드러운 크레이프샤쓰(저고리)와 우단치마를 짠후 인삼즙으로 크레이프샤쓰(저고리)를 눈보다 희게 물들였고 인삼꽃으로 우단치마를 아침노을보다 더 붉게 물들였다.
그녀가 이처럼 아름다운 복장을 한 까닭에 세상에 홍라녀라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발해 황제는 미녀를 선발하고 있엇는데, 솜씨가 뛰어난 기술자들에게 아름답고 정교한 금거울을 만들게 하였다.
이 보배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만이 거울에 그 모습을 남길수 있었다.
도사가 발해 황제를 위해 그 거울을 가지고 5경 15부 62주 130현을 다녔으나 거울에 맞는 미녀를 찾을 수 없었다.
도사는 후에 산좋고 물좋은 경박호를 지나다 홍라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도사가 처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거울을 비추자 홍라녀의 모습이 거울 속에 그대로 비추고 있엇다.
발해 황제는 도사의 말에 넋이 나가고 너무 기쁜 나머지 직접 경박호에 왕림하여 홍라녀를 황후로 책봉하려 햇다.
그러나 홍라녀는 부귀영화를 탐내지 않았고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강력하게 혼인을 거절하고 남몰래 경박호의 폭포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발해황제의 그녀의 미모가 그리워 홀로 폭포 앞에 서서 폭포 뒤에서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우단을 짜는 홍라녀의 뒷모습을 볼수 박에 없었다.
그는 또 명을 내려
"한 사람만이 볼수 있고 두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이렇게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으나 발해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보귀(고귀)한 것이 무엇이냐?"
를 깨닫지 못하고 끝내 폭포 앞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6.공주정독형 전설...
이 전설에 등장하는 홍라녀는 발해 황제의 딸이다.
나이어린 홍라녀는 노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딸이었다. 발해 황제는 더울세라 추울세라 그녀를 안아주고 돌보아 주었으며 그녀를 위해 황궁에 49개의
붉은 산호로 그녀가 잠자는 처소를 장식해 주었고 마노에 상아를 박은 장식품으로 침대를 해주었으며 장안에서 가져온 꽃비단으로 침대휘장을 해 주엇으며 부상(지명)의 우단으로 이부자리를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세월이 흐르고 어린 홍라공주는 무럭무럭 아름답게 자랐다.
발해 황제는 16세가 된 홍라공주에게 부마를 정해주기 위해 세 달에 걸쳐서 사위를 물색햇는데 그 결과 네 명의 젊은 남자들이 후보가 되었다.
1)한 젊은이는 문인.
2)두번째 젊은이는 무인.
3)한 사람은 집에 거색의 재산을 보유하고 잇는 거부.
4)마지막 후보는 대대로 벼슬을 한 관리의 후손.
홍라공주(홍라녀)는 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퉁소를 불었는데 모두 음악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실망한 홍라녀는 외출삼아 경박호에 가게 되엇는데 그 곳에서 어부로 살아가고 있는 한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홍라녀와 어부는 서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정이 들어 가까운 벗으로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발해 황제의 반대를 받게 되었다.
홍라녀는 근심하던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발해 황제는 이후 그녀를 위해 그녀를 경박폭포에 장례를 지내 주었다.
7.어매음탕형 전설...
이 전설에 등장하는 홍라녀는 발해 황제의 여동생이다.
그녀의 용모는 꽃과 구슬같이 아름다웠으며 노래와 춤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예의범절을 몰랐으며 경망하고 음탕하기 작이 없었다.
발해 황제도 그녀를 여러차례 가르치고 타일러 보았으나, 어지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늘 조정의 관리들과 사통하고 정을 통했다. 훗날 질투심이 강한 한 귀족부인에게 독살되고 말았다.
발해 황제는 그녀로 인한 황실의 치욕을 씻기 위해 쇠사슬로 홍성관을 메어 경박폭포에 장례를 지내게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발해 제국의 여인들이 이 물을 마시게 되면서 발해 내에 음란한 기풍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8.홍라녀사후성신형 전설...
이 전설에 등장하는 홍라녀는 어부의 딸인데 연꽃처럼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으며 몸에서는 아름다운 향이 났다.
어느날 그녀가 도사산에 들러 제를 지내던 중 발해 황제의 눈에 들게 되었다.
발해 황제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반하여 멍히 서 있다 이윽고 신료들에게 명령해 홍라녀를 입궁하게 하였다.
홍라녀는 발해 황제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세우면서 세 가지 약속을 모두 지킨다면 발해 황제를 따라 입궁하겠다고 말했다.
1)가난한 백성들이 마음대로 황무지를 개간하며 살수 있도록 할 것.
2)백성들이 기르는 돼지는 마구 징수하지 말 것.
3)경박호 일대 백성들의 그물세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해 황제는 홍라녀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승낙했다.
홍라녀는 발해 제국의 황후가 되어 입궁했으나 황궁의 생활에 적응이 되지 않아 입궁한지 1년도 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후에 그녀를 경박폭포 아래에 안장을 하게 했다.
그녀가 발해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늘 그녀를 그리고 있으며 그녀가 사후 신선이 되었다 하면서 집집마다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9. 홍라녀거란형...
이 전설에서 등장하는 홍라녀는 하늘의 홍라산성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자리잡은 것이다.
얼핏 보면 호수에 많은 연꽃이 떠 있고 연꽃과 연잎들은 찬란한 금빛을 뿌리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연꽃 위에 짫은 흰 명주저고리에 붉은 명주치마를 입은 여인이 서 있는데 그녀의 옆에는 눈같이 흰 천리마가 서 있다.
그녀가 바로 홍라녀다.
발해 황제는 그녀를 황궁으로 데려온 뒤, 그녀를 막내아들이자 태자인 대홀한에게 시집을 가게 했다.
거란국은 발해를 멸망시키려고 당에 가는 발해의 사신들을 붙잡아 거란에 억류했다.
태자 대홀한도 이 때 거란에 잡히게 되었다.
홍라녀는 홀로 말을 타려 적진을 용감하게 돌파하여 대홀한을 무해 무사히 귀국하였다.
대홀한의 형 대홀리는 주색에 빠진 자이엇는데, 홍라녀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하엿으나 오히려 큰 낭패를 보게 되었다.
후에 홍라녀는 거란 군사를 격파한 뒤, 장렬하게 전사하였는데 발해국에서는 그녀를 경박폭포에 안치하였다.
--->영화 무영검의 모티브가 된 전설입니다.
10. 홍라녀와 은도바특리형...
이 전설에서 서술한 홍라녀는 발해 황제의 딸이다.
발해국 황제의 외동딸인 홍라공주는 아홉살 때부터 장백성모 불고륜마법의 제자가 되어 무예를 익혔는데 7년뒤 스승의 명을 받아 산에서 내려와 거란의 침입을 막아 싸우게 되었다.
그녀가 산에서 내려갈 때 스승은 그녀에게 세 가지를 부탁하였다.
1)백의장군 은도바특리가 그녀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
2)흑탑을 만나면 꼭 돌아서야 할 것...
3)시기가 되면 그를 산으로 데려갈 것...
그녀가 전투에 나가 스승의 말을 듣지 않고 전투하다 적에게 패하게 되엇는데 오동성을 지키던 백의장군 은도바특리가 그녀를 구원해 주었다.
이리하여 홍라녀와 은도바특리 두 사람은 평생을 약속하게 되었다.
원수 대영사는 홍라녀에게 반하였고 또 숙부가 황위를 은도바특리에게 물려줄 것이 걱정되었다.
그러므로 방법을 내어 홍라녀와 은도바특리의 관계를 파괴하는 동시에 거란간첩의 유혹대로 게책을 내어 은도바특리와 대흠무의 관게를 교묘히 이간질시켰으며 나라의 이익에 손해가 가게 되어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계략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대흠무는 그의 계략에 넘어가게 되어 은도바특리의 벼슬을 낮추게 한뒤 거란과 싸워 입공속죄하게 하였다.
또 대영사는 시비를 뒤섞어 은도바특리를 독살했다.
대영사는 모든 음모가 완성, 실현되었다고 생각하고 홍라녀를 서궁(후궁)으로 맞아들이려고 서둘렀으며, 대흠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러 애를 썼다.
발해 황제는 대영사에게 홍라녀를 시집보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홍라녀는 대의를 잘 알았고 나라의 안전을 첫째로 생각해 거란군을 세 번이나 격퇴시켰다.
그녀가 겉으로 부황(홍라녀의 아버지 발해 황제)이 정해준 혼처를 접수할 당시 이미 그녀는 은도바특리가 숨지기 전 자신에게 남겨준 혈서를 통해 자신과 은도바특리가 대영사의 계책에 속았다는 사실을 백마를 통해 (은도바특리가 죽기 전 혈서와 같이 자신의 백마를 홍라녀에게 보냄.) 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스승의 부탁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홍라녀는 거란을 격파하고 본국에 개선한후 혼레식에서 원수 대영사를 죽이고 사랑하는 이에게 제를 지낸후, 은도바특리를 잃은 것 때문에 비분을 품고 자결하였다.
후에 발해 황제 대흠무는 모든 진상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후회막급이었다.
대흠무는 철쇠로 홍석관을 들어다 사랑하는 달을 산굴에 안장하였는데 산꼭대기에서 폭포가 내려와 굴을 자연스럽게 막아주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경박폭포이다.
나라에 충성하고 또한 사랑하는 정인에게 충성한 홍라녀의 전설과 홍석관의 전설은 천년이 지나도록 계속 전해지며 줄곧 은도바특리가 지켰던 오동성과 멀리 마주하고 있다.
--->일전 소개한 천년의 향기 모티브가 된 전설입니다.
11. 홍라와 경박 소용왕형...
이 전설에 등장하는 홍라녀는 발해 황제의 딸이다.
공주는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라고 깊숙한 궁전에 있어 항상 신변에 많은 심부름군이 있어 그녀의 요구를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었다.
세월이 흘러 홍라공주는 어느사이 처녀가 되었다.
이리하여 발해 황제는 그녀에게 휼륭한 부마를 얻어 그녀를 시집보내려 했다.
나라의 여러 황족과 귀족,고위관리들은 모두 저마다 홍라녀의 미모에 반해 청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홍라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경박호에 사는 한 가난한 어부를 마음깊이 사모하고 또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라녀가 그녀의 아버지인 발해 황제에게 진상을 대담하게 아뢰니, 발해 황제는 대노하여 그녀가 가난한 어부에게 시집가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였다.
홍라녀는 국법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정인에게 깊이 마음을 두었다.
홍라녀는 자신의 뜻을 표명하기 위해, 경박호에 몸을 던져 자결하려 했으나 뜻박에도 물속의 고기들이 그녀를 에워싼 뒤 이윽고 용궁으로 안내하였다.
원래 홍라녀가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어부는 다름아닌 뜻밖에도 경박호수의 교룡이었다.
이 때부터 홍라녀는 아무 걱정없이 자신의 연인과 함께 아름다운 경박호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12. 용녀거빙형...
이 전설에서 서술한 홍라녀는 경박호 호수 아래 늙은 용왕의 막내 딸이다.
그녀는 눈과 곷처럼 무척 아름다운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무명을 즐겨 입었다. 그러던 어느 때, 눈깜짝할 사이 홍라녀는 어른으로 자라게 되었다.
늙은 용왕은 그녀에게 명하기를 조수부 아래 천을 짜게 하였는데 경박폭포는 그녀가 짜낸 것이다.
어느 해 발해 황제는 경박폭포 앞에 오게 되어 홍라녀를 보게 되었는데, 그는 홍라녀의 미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발해 황제는 그녀를 후궁(첩)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그녀를 계속 부르게 되었으나, 홍라녀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속수무책이 된 발해 황제는 폭포 옆에다 망미루라는 이름의 누각을 세우게 한뒤, 그 앞에 돌비석을 하나 세우게 했다.
비석에는
"한 사람만이 볼수 있고 두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된다."
고 쓰여 있었다.
13. 삼인동련홍라녀형...
이 전설에서 서술한 홍라녀는 경박호수 아래 용왕의 딸이다.
그녀는 온종일 조수루 아래 앉아 천을 짜고 있었다.
어느해인가 사냥꾼 삼형제가 사냥을 하러 경박호에 방문하였다가 우연히 그녀를 보게 되었다.
그들 삼형제는 홍라녀의 빼어난 미모에 반해 더는 그 곳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홍라녀를 보기 위해 경박호 근처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홍라녀는 밤마다 그들의 꿈에 나타나 이 곳을 떠나라고 권고하였다.
" 세 오빠들께서는 어서 이 곳을 떠나세요. 오빠들은 저를 결코 기다려낼수 없어요. 저는 천하의 가난한 백성들이 다 옷을 입을 때 가서야 천자기를 그만두고 조수루를 나갈수 있어요."
그러나 삼형제는 홍라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그 곳을 더나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들 삼형제는 아름다운 홍라녀를 보기 위해 이곳 경박호에서 한해 두해 보내다가 삼형제 모두 늙게 되었다.
그들 삼형제는 마침내 경박 폭포 아래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홍라녀는 그들 삼형제를 모두 가엾게 여겨 폭포의 맞은 편에 장례를 지내주었다.
그 때로부터 사람들은 폭포 맞은 편의 산을 삼형제무덤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바로 그 산아래 사냥꾼 삼형제가 묻혀 있는 곳이다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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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라녀 전설 중 은도바특리 전설에서 눈길끄는 점.
전설대로라면 3대 황제 대흠무의 형이자 태자 대도리행(2대 황제 대무예의 장남)의 아들이 혹시 대영사는 아니었을까요?
대무예의 장남이자 태자 대도리행은 서기 734년 당에서 병으로 사망합니다.
그러나 일설로는 숙부 대문예(대무예의 동생) 에게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대도리행의 급사로 인해 대무예의 차남 대흠무가 태자가 되고 이어서 서기 737년 발해의 황제로 즉위합니다.
아무튼 대영사와 대도리행,대흠무의 관계 진지하게 재고해보아야겠습니다.